안성미리내권역
미리내 성지
성지 소개
미리내성지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마련되어 있는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모시고 있는 천주교의 유서 깊은 성지이다. "미리내(은하수의 순 우리말)" 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곳은 지금 보아도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때 경기도와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여기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주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았다.
이 성지에 "미리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이 밝힌 호롱 불빛이 깊은 밤중에 보면 은하수처럼 보인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리내 성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이 곳에 묻힌 뒤부터이다. 김대건 신부의 왼쪽에는 김 신부에게 신품을 주셨던 페레올 고 주교님이 1853년 4월 12일 모셔졌다. 김신부의 어머니 고 우술라와 김대건 신부와 고 주교의 시신을 미리내로 모시는 일을 하였던 이민식 교우의 묘소도 있다.
이 외에도 미리내에는 이름없는 16위의 천주교 순교자들이 모셔져 있다. 1976년 용인시 내사면 대대 4리에 있던 음다라니 산기슭의 목없는 줄무덤에 묻혀 있던 12분, 용인군 수지면 신봉2리 지붕골 밭기슭 돌무덤에서 4위를 모셔왔다. 용인시 이동면 묵리 산29번지 한덕골에서 모셔 왔던 시신은 뒤에 이윤일 요한 성인임이 밝혀졌고, 다시 이분이 돌아가신 대구 대교구 관덕정으로 모셨다.
미리내 성지에서 성인이 묻혔던 자리만은 보존하고 있다.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였다. 김대건은 1821년 충남 당진군에서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 태어났다.
그는 1863년,15세 때 조선인 사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 신부 모방의 눈에 띄어 신학생으로 중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1844년 12월에 부제품을 받았고 이듬해 8월 상해 부근 김가항(金家港) 신학교 성당에서 한국 최초의 신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45년에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비밀리에 입국하여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며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신분이 탄로나서 체포되고, 신부가 된 지 겨우 1년이 되던 해인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하게 된다.김대건 신부는 "사학죄수"라는 죄목으로 칼을 맞고 죽었다. 김신부가 천주교를 전파하는 것을 돕던 이민식(당시 17세) 소년이 관리들 몰래 죽은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을 미리내까지 옮겨왔다.
200여 리나 멀리 있는 이 곳에 와서 1846년 10월 30일 자기의 선산인 지금 김대건 신부의 묘 자리에 시신을 모셨다. 1901년 5월 18일, 성(聖)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용산에 있는 예수성심 신학교 성당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혜화동 가톨릭 대학교 성당에 모셔져 있다. 1928년 9월 18일에는 김대건 신부 묘소 뒤편에 작은 경당을 세우고 이후 성 김대건 신부의 석상과 한국 천주교 103시성 기념 성당을 세우는 등 성지의 모습을 갖추어 왔다.
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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